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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 이지당

  • 위치

    충청북도 옥천군 군북면 이백6길 126 (군북면)

  • 문의 및 안내

    옥천군청 문화관광과(문화재) 043-730-3414

  • 쉬는날

    연중무휴

  • 신용카드 가능여부

    없음

개요

* 성리학자 조헌을 기리는 서당, 이지당 *
충청북도 옥천군 군북면 이백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서당으로 1977년 12월 6일 충북유형문화재 제42호로 지정되었다. 조선시대 중엽 옥천읍
옥각리에 사는 금(金), 이(李), 조(趙), 안(安)의 4문중이 합작해서 세운 서당이다.
당초에는 각신동(覺新洞)이라는 마을 앞에 있었으므로 각신서당(覺新書堂)이라고
하였다. 여기서 후학을 가르쳤던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 조헌(趙憲:1544~1592)의 친필로
된 ‘각신서당’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조헌은 본관은 배천(白川), 자는 여식(汝式), 호는
중봉(重峯), 도원(陶原) 또는 후율(後栗)이며, 시호는 문열(文烈)이다. 이이의 문인
가운데서도 뛰어난 학자로, 〈기발이승일도설(氣發理乘一途說)〉을 지지하여 이이의
학문을 계승 발전시켰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義兵)을 일으켜
1,700여 명을 규합하여 영규대사(靈圭大師)의 승병(僧兵)과 함께 청주(淸州)를 수복하는
공을 세웠다. 그러나 그후 금산싸움에서 700명의 의병과 함께 순국하였다.
 
* 이지당의 유래 *
각신서당은 후에 송시열(宋時烈)이 《시전(詩傳)》에
있는 ‘고산앙지 경행행지(高山仰止 景行行止)’, 즉 ‘산이 높으면 우러러 보지
않을 수 없고 큰 행실은 그칠 수 없다’ 라는 뜻의 문구에서 끝의 ‘지(止)’자를
따서 이지당(二止堂)이라고 고쳐 불렀다.
 
그후 퇴락된 것을 1901년(광무 5) 이 서당을 세웠던
4문중에서 재건하여 오늘에 이른다. 현재 서당 건물은 목조 6칸의 강당과 누각으로
되어 있다.

유모차대여 여부

불가

애완동물 가능 여부

없음

홈페이지

옥천 문화관광 http://tour.oc.go.kr 문화재청 http://www.ch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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