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곡마을 주변관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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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양장터 3·1운동 만세시위지

  • 위치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옛장터3길 7

  • 문의 및 안내

    관광안내소 052-229-6350

  • 신용카드 가능여부

    없음

개요

* 1919년 4월 2일 울산군 언양장터에서 장꾼 700 ~ 800여 명이 독립만세시위를 벌인 곳 *
1919년 3월 하순 울산군 상남면에서는 천도교 계통의 유지들이 중심이 되어 만세시위를 준비하였다. 그 중심인물은 상남면 길천리에 사는 이무종(李武鐘)·이규인(李圭寅)·이성영(李成榮)·강경찬(姜庚贊)·최해선(崔海璇)·이규경(李圭庚) 등 6명이었다. 이들은 만세시위 일자를 4월 2일 언양 장날로 정하였다. 그리고 4월 1일 밤 상남면 길천리 이규인 소유의 빈 집에 모여 태극기를 제작하는 등 시위를 준비하였다.
다음날 4월 2일 이들 6명은 밤새 제작한 태극기를 비밀히 간직하고 이른 아침 언양장터로 잠입하였다. 장터에는 울산군의 상남·중남·삼동·두동·두서의 각면과 양산군 하북면으로부터 700~800여 명의 장꾼들이 모여들었다. 이들은 태극기를 장꾼들에게 나누어 준 후 읍내시장 복판인 남부리 도로상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소리높여 외쳤다.
경찰은 시위 주도자 몇 명을 언양경찰관주재소로 연행하였다. 그러자 시위대는 만세를 외치면서 주재소로 쇄도해 들어갔다. 일본 군경이 공포를 발사하자 격노한 군중들은 일제히 이들에게 투석으로 맞섰다. 군중들이 달려들어 순사의 총기를 탈취하려는 육박전을 벌이자 일본군 수비병은 시위 군중들에게 무자비한 총탄 세례를 가하여 시위군중 1명이 즉사하고 5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시위군중들이 흩어지자 일본 군경은 주요 인물 검거에 나섰다. 이리하여 48명의 인사들이 검거되어 재판을 받았는데, 시위 주도자 대부분 징역 1년에서 징역 6월형을 언도받고 부산형무소와 대구형무소 등에서 옥고를 치렀다.

[출처 : 국가보훈처 현충시설 정보서비스 홈페이지]

유모차대여 여부

없음

애완동물 가능 여부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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