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치
경남 산청군 산청읍
문의 및 안내
산청군청 055-970-6000
신용카드 가능여부
없음
경상남도 서부에 위치한 군으로 동쪽은 의령군과 합천군, 서쪽은 함양군, 남쪽은 진주시와
하동군, 북쪽은 거창군과 접하고 있다.
면적은 794.6㎢ 이며, 인구는 약 35,930명(2014년 3월 기준)이다. 1읍 10면 119리로 되어
있으며, 군청 소재지는 신청읍 옥산리이다.
* 자연환경
천왕봉을 중심으로 한 지리산의 한줄기가 군의 서부를 남북으로 달려 경상남도 하동군, 함양군과의 경계를 이루고, 동북부에는 황매산과 소룡산, 전암산 등이 합천군, 거창군과의
경계를 이룬다.
군의 남부에는 주산, 우방산 등이 있고,북부에는 갈전산이 있으며, 중앙부에는 웅석봉, 둔철산 등이 있고 이 밖에 월명산, 백마산, 왕산이 있다.
하천은 경호강이 군의 중앙을 양천과 황매산에서 발원하는 단계천이 군의 동부를 덕천강이
서부를 각각 남류하면서 남강으로 흘러 들어간다.
* 역사
고대 - 가야 계열의 부족국가가 이 지방에 분립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되며, 삼국통일 후
산청지방은 지품천현이라 하였고 단계지방은 적촌현이라 하였으며, 단성지방은 궐지군이라
하였는데, 757년(경덕왕16) 궐지군을 궐성군으로, 지품천현은 산음현으로,적촌현을 단읍현으로 개칭하여 산음, 단읍 2현을 궐성군 소속의 영현으로 하였다.
고려 - 고려 초 궐성군은 한때 강성현으로 강등되었다가 뒤에 강성군으로 되었으며,
단읍현은 단계현으로 개칭하였다.
1018년(현종9) 산음.단계 2현은 합주에, 강성군은 진주목에 소속되었다가 1390년(공양왕2)
단계는 강성군의 영현으로 복귀하고 산음.강성에 감무를 두었다.
조선 - 1399년(정종1)거제도의 영진현이 왜구를 피하여 강성현으로 옮겨오면서 두 현을 합쳐서 진성현으로 개칭하였다.
1413년(태종13) 산음현의 합주 소속이 해제되면서 현을 지금의 산청읍으로 옮기고 현감을
두었다.
1432년(세종14) 명진현이 거제도로 수복되면서 강성현과 단계현을 합쳐서 단성현으로 개칭하고 현감을 두었다.
임진왜란 직후, 1599년(선조32)단성현을 폐하여 그 일부를 산음현으로 편입 하였다가 1613년(광해군 5) 단성현을 복구하였다. 1767년(영조43) 산음현을 산청현으로 개칭하였다.
근대 - 1895년 산청현과 단성현이 군으로 개편되었다.1906년진주시의 삼장, 시천등 6개 면이 산청군으로 편입되고 1914년 단성군이 산청군으로 통합되었다.
현대 - 1979년 산청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 문화
문화제 - 매년 10월10일부터 2일간 개최되는 지리산평화제의 행사내용은 지리산 산신제 등의 제례행사와 지역개발, 안보,사회봉사, 교육문화 부문에 현저한 공적이 있는 자에게 군민의 이름으로 수여하는 평화상 시상식으로 치러진다.
농악경연 등의 민속행사, 한시·한글백일장 등의 문화행사, 각종 체육대회 등 25∼30개 종목이 다채로운 행사도 펼쳐진다.
민속 - 마근담 본 줄다리기는 삼국시대부터 시작된 민간풍 속으로 중국. 일본 등 도작문화권에서 상원달 (정월)에 그해의 풍년 농사를 기원하는 한편, 벼농사를 지었음을 자랑하고
매년 농사도 잘되게 농경사회에서 힘과 화합을 목적으로 실시 되어온 민속놀이다. 마근담
줄다리기도 경남 지방의 창녕영산줄다리기 및 의령 큰줄다리기와 같은 경호강을 경계로 동군서군을 편성하여, 해방전까지 며칠 간을 줄다리기를 했다. 승부에 따라 그 줄을 잘라 나누어 가지고 승자쪽이 그 줄을 썰어 소를 먹이고 퇴비를 하였으며,
승자는 세금감량을 받았으며, 패자가 그 해 조세를 부담하였다고 한다. 패자가 승자쪽에 그해 농사를 지어주기,
보를 막아주기, 경호강이 수해로 피해를 입었을때 제방을 쌓아주고 퇴비를 마련해주기 등의
유래 경기로 우순풍조 (雨順風調)가 되어 풍년을 기원하며 경호강을 경계로 동·서군이 편성되어 줄다리기를 하였으나 일제의 민족문화 정기말살 정책과 군중 집회의 금지시책으로
점차 소멸되었다. 근래 농경사회가 산업화되는 과정에서 점점 축소되어 현재 민속놀이로
산청 11개 읍면에서 맥을 이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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