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사예담촌은 이순신 장군의 행적을 담고 있는 곳이다. 임진왜란 당시 남해의 제해권을 장악한 이순신 장군이 모함으로 인해 한양으로 압송되어 죽을 위기에 놓였다. 이때 영의정 류성용과 판중추부사 정탁 등의 진언으로 사형의 위기를 넘기어 1597년 4월 1일 옥에서 나왔다. 그러나 왕의 명은 ‘백의종군’이었다. 삼도수군통제사에서 계급 없는 군인으로 강등된 이순신은 같은 해 4월 3일 한양을 출발하여 6월 2일 초계에 도착했다.
난중일기에 이때 ‘백의종군’하는 이순신 장군의 행로가 나와 있다. 이순신 장군은 1597년 6월 1일 하동군 옥종면 정수리에서 출발하여 오후 늦게 산청의 단성면 사월리 박효원 종의 집에서 유숙했다. 종의 집 헛간에서 빈대에 물려가며 잠을 설치면서도 구국의 일념으로 백의종군 길에 오른 이순신 장군은 날이 새자 길을 재촉하여 6월 2일 늦은 아침에 단계천(현재 산청 단계마을) 가에 도착하고 이곳에서 아침을 먹었다. 이후 삼가를 거쳐 권율 장군의 진영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46일 간 머물다가 칠천량 해전의 참패 소식을 듣고 나서 권율 장군의 말에 따라 남해의 전세를 살피기 위해 7월 18일 삼가현을 거쳐 7월 19일에 단계천변을 지나 지금의 신안면 백마산성에 올라가서 지세를 살피고 단성현에서 하룻밤 유숙했다.